기형도(1960-1989) 시인은 들어보지 못했어도 그가 남긴 작품들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거라 확신한다. 제목에 쓰인 '유예된 죽음의 언어'란 표현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기형도 전집』의 표지 뒤편에 쓰인 말에서 따온 것으로, 간결하지만 그만큼 기형도의 시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되어 이렇게 인용하였다.
기형도의 시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견디는 시의 강렬한 내구력이다.
그의 시 내부에서 떠돌고 있는 끊임없는 죽음에의 예감. 우리는 기형도의 시 도처에서 그 예감의 색깔로 물든 어느 푸른 저녁의 축축하고 불길한 안개를 만났다.
시인은 이미 그의 시 속에서 충부한 죽음을 살았던 것이다. 기형도 시의 강렬한 내구력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시인을 습격했던 바로 그 죽음에의 예감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기형도의 언어들은 유예된 죽음의 언어들이다. 죽음에의 예감으로 끝없이 죽음 이후의 삶을 연장해가는 언어.
지금까지 우리 시에서 죽음과 절망을 이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았던, 그리고 그것을 이처럼 매혹적인 언어의 성(城)으로 쌓아올렸던 시인은 없었다.
기형도, 그토록 치명적이고 불길한 매혹, 혹은 질병의 이름
출처;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1999, 책의 뒷표지에서 발췌.
내가 기형도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엄마 걱정〕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 시를 보고 감탄하며 시인이 누군가 외운 것은 〔안개〕, 기형도라는 이름을 보고 두근거리기 시작한 것은 〔질투는 나의 힘〕과 〔홀린 사람〕이었다. 〔홀린 사람〕은 그 상징성 때문인지 몰라도 언어 문제집과 사설 모의고사에서 제시문으로 출제된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하염없이 시를 몇번이고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대학교에 와서 좀 더 운신이 자유롭게 되고 여유시간이 늘어나 광화문 교보문고나 코엑스 반디앤루니스 종로 영풍문고같은 큰 서점을 가는 경우가 잦았다. 책 냄새도 그렇지만 그런 대형 서점일수록 현 시대를 반영하는 책들의 흐름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서 시간날 때 가서 요즘의 베스트셀러를 죽 훝어보고 구석진 데 가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마저 읽은 뒤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시집 코너를 지나가다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여 반가워 멈춰서게 되었다. 익숙한 이름들이란게 다름이 아니고, 고등학교 시절 넌더리나게 많이 봐왔던 시문학 제시문들, 그 중에서 맘에 드는 시 제목과 시인 이름은 외워놓았던 것이 대학 생활을 하면서 흐물흐물해졌던게 시집 모음을 보면서 하나 둘 기억이 나더라는 것이었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유치환 시인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그러다 어느덧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손이 이르렀고, 코엑스를 나설 때 내 손에는 이미 시와 영수증이 들려있었다.
한창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분도 우울하고 그런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시를 읽으며 나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몇 번, 고등학교 때 얕은 지식으로 알아놓았던 시들 중에 기형도 시인의 작품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 것도 알았고, 〔홀린 사람〕이상으로 내 가슴을 울리는 시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래된 서적〕이었다.
오래된 書籍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나는 '분석하며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고, 학창 시절에도 제시문 분석할 시간에 차라리 두번세번 읽어서 문제를 푸는 것을 택했던 이다. 시 〔오래된 서적〕 또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이 시를 차츰차츰 읽어가다가 문득 마지막의 한 줄――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에 가서 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시 전체를 읽고 부분을 읽고 단어 하나 하나를 읽다가 다시 전체를 읽고 그렇게 곱씹을수록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단지 두 페이지의, 그것도 한 줄 한 줄을 끝까지 채우지도 않는 시 하나가 이처럼 수많은 생각을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 항상 좋은 시를 읽을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고 경탄해마지 않는 일이다.
두달이 채 되지 않은 때에 나는 다시 책 『기형도 전집』을 책장에 들여놓았고, 이전에 샀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평소 내가 취미를 같이 나누고 싶어했던 친구한테 선물해주었다.[각주:1] 좋아하는 시인도 시도 많지만 시집을 굳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것은 기형도가 처음이고 실제로 사게 된 것 또한 그가 처음이다. 외우는 것을 잘 못해서 내가 좋아한다고 써놓은 위의 〔오래된 서적〕조차도 다 외웠나 싶었다가도 며칠 뒤면 반밖에 기억을 못하지만, 화장실에서고 침대에서고 혼자 있을 때 찬찬히 읽으면 그건 그대로 느낌이 좋다.
꽤 오래 전에 내가 다니던 다음 카페에서 '학창시절에 감명깊었던 시'로 글이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자기 추억을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것을 보면 다 공부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도 마음 한쪽에 여린 감성 하나씩은 품고 살았었나보다. 바쁜 일상에 휘말려 여유를 잃었다면 집에 가는 길, 작은 서점에라도 들러서 시집을 잠깐 훑어보는 게 어떨까. 왠만한 시는 길어봐야 세 페이지를 넘지 않아 통근 시간대 꽉 들어찬 버스 안에서도 잠시 읽으며 감상에 젖기에 좋을테니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기형도 전집』을 사고 보니 책 검색표가 끼어 있었다. 누군가 검색해놓고 시집에 끼위놓은 뒤 잊어버렸나 보다. 신림 반디앤루니스였는데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였다. 당연히 검색표답게 위치도 'C315-1 1단부터'라고 나와있었고 이 책에 대해 매우 흥미가 생긴 나는 그 다음날 가보았으나 책을 찾지 못하여 읽을 기회가 없었다. 리뷰쓰면서 생각이 났으니 나중에 읽으러 가봐야겠다. [본문으로]
갑자기 오늘 밤(이 아니라 어젯밤...)에 블로그를 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새벽까지 매달렸다. HTML이고 CSS고 건드려본지 너무 오래되서 구조 보는 것도 겁나더라. 사실 계기는 별 거 아니었는데 내가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다가 문득 너무 빽빽하단 느낌이 들어서 글씨 크기를 키우려고 했다. 줄간격도 좀 늘이고 해봤는데 갑자기 글씨체가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급 글씨체 바꾸기를 하려고 마음먹고 무료 글씨체를 찾았는데 역시 만만한게 서울남산 & 한강체와 네이버 나눔글꼴들이더라.
여튼 그리되어 글씨를 받으러 돌아다녔다. 둘 다 네이버든 다음이든 검색만 하면 쉽게 나오니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실 웹폰트 형식인 *.eot 형태로 바꾸는 것까진 일사천리였다. 참고로 본인은 EotFast란 프로그램을 썼다.
그런데 웹폰트 자체를 홈페이지에 적용시키는 과정은 이해가 가도 직접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내가 항상 그런 면이 있지마는 요번에는 이 시간까지 고생했으니 머리가 썩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어찌어찌하여 /'pəlp/ 님의 블로그에서 찾은 방법으로 웹폰트를 적용시켰다. 많이 헤맸지만 어떻게든 되어서 다행이다. 기본글꼴 중에는 명조체를 좋아하는데 받은 글꼴은 서울남산체와 나눔고딕이 더 끌려서 그 둘만 등록하였다(전부 하려면 스킨 파일 최대 한도인 20MB를 넘어서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이 나눔고딕 많이 쓰는데엔 이유가 있더라. 보기에 꽤 깔끔해 보인다. 그리고 서울남산체만 하더라도 작은 글씨체에서 약간 뭉개지는데 나눔글꼴은 웹을 겨냥하고 만들어서 그런지 이런 문제가 악질적이지 않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웹폰트가 익스플로러에서나 적용된다는 것이다. 파폭도 자주 쓰는 나로썬 뼈아프다. 글씨 크기를 키우니까 굴림은 너무 꽉 차 보이는 느낌이 드는걸 어떡하나.
다음으로 같은 분의 블로그에서 글씨체 관련 팁 보다가 눈에 들어와서 얼떨결에 하게 된 버튼식 스크롤. 이녀석이 나의 새벽 2시~5시를 잡아먹었다. 요즘은 문명도 안하는데 이 시간까지 깨어있게 되다니... 자바스크립트는 내가 넣기 싫어서 뺐는데 버튼은 내가 직접 만들고 싶어서 포토샵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했다. 그 결과가 다음과 같다.
티스토리는 그냥 사진 놓는게 뭐 이리 어려운지 가로로 쭉 늘어놓고 싶은데 그런 기능은 없다. 처음 만든게 왼쪽 네개인데 각각 클릭하면 들어갔다가 다시 떼면 나오도록 만들었다. 근데 너무 눈에 띄는 것 같아서 다시 만든게 나머지들. 멋은 떨어지지만 난 그냥 눈에 안 띄게 돌아다니는 녀석을 원했기에 이걸로 했다. 언제 맘에 안들면 또 퇴출당할지 모르는 녀석들이다.
지금도 보일텐데, 화면 맨 오른쪽 아래에서 시큰둥하게 있는 녀석들이다. menu 버튼 누르면 맨 위로 가고 sidebar 버튼 누르면 사이드바까지 간다. 잘 작동하니 흐뭇하다. 이 버전은 클릭이 아니라 마우스의 over, out에 반응하게 되어있다. 즉, 마우스 올리면 짙어진다
이리 바꾸고 나니 전체 디자인도 바꾸고 싶어졌다. 티스토리에서 주는 팀 스프링 노트 디자인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사실 그닥 맘에 드는 건 아니다. 1단 사이드 바로 바꾸느라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한데 이제 또 고생이 태산같이 몰려올 것 같다.
... 이거 쓰는 동안 파이어폭스로 다시 확인했더니 소스가 깨져있었다. 그래서 고치느라 다시 삼십분을 썼다. 사실 내가 뻘짓을 한 거지만... sidebar가 멋대로 margin값이 바뀌고 background image가 먹히지 않아서 그거에 맞게 다시 추가한 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방명록같은데 들어가면 반대로 이상해 지는 것이다. 알고보니 내 스킨 css 문제가 아니라 글씨체 바꿀때 강제로 글씨체 지정 없앤답시고 본문 글들의 html 버전을 좀 고쳤는데 거기서 발생한 문제인걸 알았다. 꽤 전에 쓴(하지만 바로 직전 글인) 아서 C. 클라크 유년기의 끝 리뷰를 재저장하고 적당히 오류를 끝냈다.
Arthur C. Clarke, 소준선 역, 『유년기의 끝』, 나경문화, 1992.
장르; SF
가격 4,500원의 위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표지가 뜯겨져 있어 원래 모습을 알 수가 없고 네이버 책 검색에서도 표지가 나오지 않아 표지그림은 생략한다. 그대신 Flickr에서 퍼온 적당한 행성 이미지를 넣어보았다. 출처는 그림에 있다.
초록색이 묘해서 가져왔다. 멋지지 않은가?
출처는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있다.
원제 Childhood's End. 제목의 한글 번역도 정직하지만 저 제목 또한 내용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바람직한 제목이다.
여기서 간단한 저자소개. 아서 C. 클라크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3대 SF 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사실 필자는 이런 걸 잘 몰랐다). 뒤늦게 검색해보니 로버트 하인라인의 작품은 읽어본 것이 없고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서 C. 클라크 건 한두개씩 있었다. 오히려 필립 K. 딕 단편선이라든지 SF 명장 단편집 등을 읽어서 작가는 모르고 지나간 작품들이 더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다른 책들로는 『라마와의 랑데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영화로 먼저 보고 책도 예전에 읽었다), 『태양계 최후의 날』 등이 있고 지금 도서관에서 또 빌려온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시리즈가 황금가지에서 나왔으니 관심있는 사람을 가져다 읽으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봤을 때의 감상이 그대로 떠오르는 건 이 작가의 우주에 대한 인식이 거기나 여기나 똑같이 드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신비롭고 경외스러우며 인간의 인식 이상으로 뻗어나가있는 세계. 간혹가다 심해공포증과 같이 우주공포증에 대한 말들이 오가는데, 이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일 또는 사건,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심리적인 현상이라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유년기의 끝』을 읽으면 이러한 느낌들이 상상력이 된 문학으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스포일러가 조금, 아니 꽤 있을 수 있겠다. 우선 줄거리를 간단 요약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 말 그대로 간단 요약이고 지금 생각나는대로 쓰는 것이니 크게 기대하고 읽지는 않길 바란다.
가볍게 목차에 대해 서술해보면 크게 [프롤로그 | 제1장 지구와 오버로드 | 제2장 황금시대 | 제3장 마지막 세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서 C. 클라크의 작품(또는 이와 비슷한 것들)을 처음 접한다면 마지막이 충격과 공포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지구의 하늘 위에 수많은 우주선들이 내려오(는 것으로 보이)면서 시작된다. 지구의 모든 하늘에는 우주선과 은빛 구름만이 보이게 되며 이로 인해 인류는 우주 진출을 포기하게 된다. 제1장에서는 바로 이 우주선들, 지구의 인간들보다 몇 세기, 아니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저 먼 곳까지 발전한 문명에서 인간들의 세계를 통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사실 통치라기보다는 간섭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스토름글렌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이 인간 대표로 우주선에 들어가 우주인 총독 '카렐렌'을 만나 명령을 받는다. 이 우주인들의 영향으로 인류는 더할나위없는 평화와 안녕을 누리게 되지만 세계 곳곳에는 아직 예전의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산재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머리 위에 떠있는 이 우주인들을 '오버로드'라 부른다.
어느날 스토름글렌은 납치되어 카렐렌의 정체에 대한 (매우 온화한) 심문을 받게 된다. 이건 뭐 스토름글렌도 몰라서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카렐렌이 적당한 때 구해주어 풀려나게 된다. 강요되었을 땐 싫다고 한 일도 자기 호기심이라면 하는 법. 스토름글렌은 특수한 장치를 과학자에게 비밀리에 부탁하여 카렐렌과의 회담 때 그의 모습을 훔쳐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말지만 카렐렌은 슬쩍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보여준 거에 대해 스토름글렌을 주저리주저리 (독백하듯) 생각하지만 그 뜻은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고 뒷내용(그것도 바로 뒤, 제2장 첫부분) 읽으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알게된다. 스토름글렌은 자기가 본 모습을 죽을 때까지 기자들에게 숨긴다.
이제 제2장 시작했다. 스토름글렌에게만 수줍게 공개했던 카렐렌의 모습이 드디어 공개하는 날 모두 환호하며 기다리는데, 정작 모습을 드러내니 이건... 악마의 모습이다. 온갖 신화에서 다루었던 악마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모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미 많은 세월동안 오버로드가 인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왔다고 모두 생각했기 때문에 대충 넘어가고, 이제 작가는 인류의 황금시대를 차례차례 보여준다. 종교는 사라져가고, 모든 편의가 충족되며 어떤 이든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대. 이 시대에 루파트 보이스라는 신화, 신비적 존재에 관심 많은(데 아닌척하는) 이의 결혼 파티가 열리는 모습을 통해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죠지 글렉슨과 진 모렐은 이 파티에 초대되어 가는데 이런저런 사람들, 사건들 넘어가고 여기서 중요한 일 몇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이 파티에는 놀랍게도 인간 세계에 거의 오지 않는 오버로드, 라샤벨락이 와 있었다(사실 서재가서 책이나 읽고 있었지만). 두번째로 제2-3장에서 중요한 장 로드릭스의 첫등장이 있다. 사실 루파트 부인 동생이라 온 것 뿐인데 좀 똘기 충만해서 계속 나온다. 세번째로, 루파트가 장난으로 위자보드를 하자고 해서 죠지로 진도 장도 참여하는데 놀랍게도 알 수 없는 존재가 위자보드를 통해 온갖 것들을 맞추고 라샤벨락도 흥미롭게 본다. 여기서 장이 갑자기 '오버로드의 태양은?'라는 (마치 이 소설 속에서는 신=오버로드에게 도전하는 듯한) 질문을 던지는데 그 알 수 없는 존재가 NGS 549672라고 대답하고 진은 갑자기 기절한다.
장은 원래 우주에 관심이 많고 공부도 좀 많이 했다(이 시대에는 대학다니는게 당연 무료에 자유지만 월등히 발달한 문명의 목격으로 탐구심 제로다. 그러나 장은 좀 다르다). 장은 몰래 우주 카탈로그로 NGS 549672 항성을 확인하고 자기가 세운 가설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 묘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루파트 파티때 만난 설리반 교수에게 부탁해 고래 몸속에 캡슐을 넣고 가사상태에 빠져 오버로드의 행성으로 떠날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오버로드는 지구의 동물 박제를 모으고 있었다). 장의 밀항 이후 카렐렌은 기자회견을 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행성은 언젠가는 당신네들 것이 될 것이오. 그러나 항성은 결국 인류의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오."
예술은 과학 이상으로 쇠퇴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이에 위험을 느끼고 뉴 아테네를 세워 예술에 대해 탐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죠지랑 진이 이 예술가 마을로 이주하면서 제3장이 시작된다. 죠지는 이미 제2장에서 진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여기선 큰아들 제프리랑 여동생 제니퍼가 생겼다. 어느날 제프리가 놀러갔다가 해일을 마주치는데 알 수 없는 목소리와 힘이 그를 도와 죽지 않는다. 어느날 오버로드가 예술촌을 방문하고 제프리를 도운 목소리가 그의 것임을 알게 된다.
6주 뒤, 제프리는 꿈을 꾸기 시작하는데 이 꿈이 꽤 희안하다. 불타는 산이라든지 해라든지 우주라든지를 반복해서 보는데 꿈꾸는 빈도가 높아지더니 점점 현실보다 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오버로드의 대화에서 제프리의 꿈이 실제 있는 행성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섬뜩한 대화가 몇 가지 나온다.
죠지 "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사물에는 반드리 일정한 논리적인 설명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샤벨락 "그렇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보셨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보고 있었으니까요." 죠지 "그렇지 않을까 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카렐렌은 오래전에 그 기계로 우리를 탐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그 약속을 어겼지요?" 라샤벨락"약속을 어긴 게 아닙니다. 총독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류는 이제 감시받는 일이 없다고요. 그리고 그 약속은 굳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당신 아드님이지 당신이 아닙니다."
죠지가 라샤벨락의 말 속에 포함된 뜻을 깨닫기까지는 몇 초가 걸렸다. 그의 얼굴은 서서히 핏기를 잃어갔다.
죠지 "그것은……?"
그는 숨이 찼다. 목소리가 가늘게 꼬리를 삼켜버려 그는 힘을 내어 다시 한 번 말해야만 했다.
죠지 "그럼 도대체 우리 아이가 무엇이라는 겁니까?" 라샤벨락"우리도 그것을 알아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왕 제프리랑 제니퍼는 인간이 아니란다. 얘네 슬슬 꿈도 현실도 없고 초능력도 막 쓴다. 추억도 없어진다. 제프리랑 제니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러기 시작한다. 위자보드하다 진이 쓰러진것도 이 애들의 가능성 때문이란다. 오버로드도 사실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그런다. 슬프게도, 인류는 인류로서의 다음 세대를 잃어버렸다.
라샤벨락이 죠지에게 "할 수 있는 동안까지만이라도 그애를 사랑해주십시오. 그 아이들은 곧 당신들의 아이가 되지 못할 테니까요."
카렐렌은 사실을 알린다. 아니 통보한다. 오버로드는 인류를 자멸의 위험에서 구해 다음 진화로 인도했다는 것을. 자기들의 위에 있는 다른 진화의 극단, 오버마인드의 존재를. 인류가 이를 받아들이던, 받아들이지 못하건 이미 시작된 일들을.
진과 죠지는 자신들의 아이가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화하는 것을 보고, 보고, 또 보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살한다.
다시 장의 이야기로 넘어오자. 장은 출발 전에 걸릴 시간을 계산했다. 오고 가는데 각각 (장의 시간으로) 2달씩 걸리고, 상대성 이론에 따라 지구는 그 사이 80년이 흘러있을 것이라 예측했는데, 꽤 들어맞는다. 우주를 보고 장은 우주에 대해 경이로움과, 공포와 그리고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장은 이리저리 치이다 오버로드도 몇몇 보고 오버로드 박물관에 가서 지구 물품들 설명도 해주고 다른 행성 물품들이나 생명체들이나 자연물들을 보며 감탄하고 충격받고 등등 이것저것 느낀다. 그리고 허무하게 다시 지구로 간다.
근데 지구가 이상하다. 인간들이 불피우던 불빛따위 보이지 않는 지구를 보며 불안감을 느끼고 지구에 내려서자마자 그 공포를 확인한다. 카렐렌은 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지금까지 지구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한다. 개체성이 사라진 아이들이 이동하다 주변의 생명을 흡수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그(아이)들은 아무런 목적도 가지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장은 카렐렌을 통해, 인류의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던 악마의 이미지가 미래에 찾아올 종말의 기억에서 연유한 것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장은 최후의 인간이 되었다.
드디어 인류의 다음 세대가 행성을 벗어나는 때, 오버로드는 떠나면서 장에게 남아서 이에 대해 관찰하고 설명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장은 6페이지에 걸쳐 말을 한다. 다음 세대가 떠나가는 것을, 인류의 유년기가 끝나는 장면을…….
그리고 지구는 사라졌다. 으헉, 지구는 에너지가 되어 인류의 다음 세대와 함께 떠나갔다. 오버로드는 인류와 같이 오버마인드로 가는 종족들을 부러워하며 계속 오버마인드에게 봉사할 것을 생각한다.
간략하게 쓴다고 해놓고 목차보며 쓰다가 꽤 늘어나버렸다. 내맘대로 왜곡이 좀 있으니 알아서 검열해보길 바란다.
이제 감상을 쓰려하는데, 스포일러 꽤 있을 가능성 높다. 이번에는 요약글 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잘 피해야 한다.
조금 사이를 띄워놔야 예상치 못한 이들의 피해가 없을 것 같다. 띄우기용 이미지를 하나 올린다.
나도 밤 사진 이렇게 잘 찍음 좋겠다.
출처; Flickr. 오른쪽 아래에 누가 찍었는지도 있다.
사실 기대한 것만큼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감동받거나 느낀게 많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사춘기 시절에 읽었더라면 좀 더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전체적으로는 일단 꽤 마음에 들고 구성상으로도―스토리 자체가 어찌보면 좀 뜬금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포함하더라도―꽤나 튼튼하다. 각 등장인물, 스토름글렌, 죠지, 장, 카렐렌 등으로 주요한 시선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전체적인 스토리의 유기성도 좋다. 스토리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아, 앞에서 이것때문에 이런저런 내용(또는 서술)이 나왔구나'하고 깨달을 만한 복선도 깔끔하고 말이다. 다만 설명이 조금 부족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나 이 부분에서 왜 이러한 내용이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직관이 잘 작용하지 못하게 하는 구석이 간간히 눈에 띄는데, 이는 '인간의 인지를 벗어나있는 우주(혹은 우주생물)'의 서술에서 인간의 시점으로 내용을 전개함에 따라 생긴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어쩌면 번역 과정에서 작가의 암시적인 말들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끔 시골에 내려가서, 또는 여행을 좀 외진 곳으로 가서 밤을 보내다보면 운좋은 날엔 구름 한 점 없고 그대신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밤하늘을 볼 수 있다. 이 때 장소만 허락한다면 적당한 곳에 누워서 별이 가득 찬 밤의 장막을 보는데, 그럴 때마다 신비함과 함께 적막과 두려움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수많은 별들이 마치 내 앞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도 들고, 이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얼마나 작은지, 또 그 안에서 나 하나는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지 생각할수록 우주가 주는 압도감에 숨이 막힐 듯하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느낄 것이라 생각하고, 아마 먼 과거 밤하늘을 보며 생각하던 원시인들도 먼 훗날 지구인들이 진짜로 우주로 진출해 우리은하를 드나드는 때의 미래인들이라 하더라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위에서의 소개글에서도 말했듯이 『유년기의 끝』은 이러한 느낌의 한 단면을 문학적 가상 세계에 현실화시킨 결과로 생각되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외계 존재들을 생각보다 내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외계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외계 존재에 더 친화적인 사람들 중심으로 서술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직접 나타난' 존재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지금 아직 그러한 존재를 느끼지 못한 나의 심적 반발보다 덜할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등장 이후 오버로드는 평화하든지 동물 보호라든지 인간 편의의 확장이라든지 적당한 기술의 전수라든지 하는 혜택들을 가져다주었고 사람들은 점점 오버로드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버로드의 등장부터 인류의 종말까지 몇시간, 길어봐야 며칠에 불과한 시간이 걸릴 뿐이지만 책 내의 시간으로는 황금시대만 하더라도 몇 세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오버로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러한 존재들이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지금까지 오버로드는커녕 어떠한 형태의 외계 존재도 만나보지 않은 나로서는 믿기보단 의심할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상대라면 대놓고는 못 그러겠지만.
『유년기의 끝』에서는 종교에 대해 매우 불신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독실한 이에게는 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오버로드가 가지고 있는 발달된 문명의 이기중에서는 과거를 자기 맘대로 볼 수 있는 텔레비전 비스끄무리 한 게 있어서 그걸로 이것저것 보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온갖 종교의 창시나 이적들이 사실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종교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비롯한 신비의 영역에 있는 세계는 오버마인드의 존재 및 이에대한 설명에서 강력히 긍정하고 있다. 즉 종교가 주장하는 이 현실세계 이면은 인정하되, 지금까지 발달해온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교나 신에 대해는 별 생각없고, 굳이 누가 물어본다면 무신론자보단 불가지론자에 더 가깝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라 가불가에 대해 딱 잘라 말할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 작가의 주장은 내게 꽤나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신은 없지만 신비한 존재는 어찌되었던 있다니, 편한 주장이다) 종교인들이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찌 읽을지 모르겠다.
결말 처리도 흡족하다. 앞에서부터 깔려있는 인류의 종말에 대한 암시와 다음 단계 진화의 등장, 오버로드의 등장과 행동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모두 이루어지고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충격을 주되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여서 극적인 가치도 꽤 높다. 특히 다 읽고 생각할 거리를 좀 던져준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책 내용 자체는 열린 결말은 전혀 아니고 스토리 전체로도 열린 부분이 없지만 이러한 의문점 이외에 소설 외적으로 우주 자체에 대한 성찰과 인간으로서의 자신, 생물의 진화와 신비주의적인 관점을 생각케한다. 다만 이러한 문제들이 너무 형이상학적이라 쉽게 마음와 와닿지 않고 사고하기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나 논의를 쉽게 자아내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친구들이랑 한 방에서 잘때(기숙사 시절엔 항상 그랬다) 잠들기 전 깜깜한 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많았다. 이럴 땐 제3자 뒷담화라든지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못지않게 죽음이라든지 우주라든지 무의식같은 잡다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제들로 밤을 지새웠던 것이 기억이 남는다. 아서 C. 클라크는 그 때의 대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바쁜 현실에서 잊고 있지만 잠들기 전 문득 생각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이런 것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흡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SF를 읽을 때 기대하는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에서의 갈등과 해결, 신개념의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 등에 대해서는 중점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니 이런 점에서 스토리라든지 서술 내용에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그 이성때문에 진화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고들 한다. 지구가 시작된지 대략 45억년이 되었다고들 하고 생명은 더 불확실해서 30~40억년쯤 되었다고들 한다. 그동안 단순한 자기복제물질로부터 미생물, 식물, 동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지들로 생명의 진화는 뻗어나갔고 그 중 인간도 그 가지의 끝에 맺혔다. 자연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어나가는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과 반대로 자신에 맟추어 자연을 변화시키는 길을 택한 인간은 그 선택 덕에 얼마 안 있어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생물로 발돋움했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자연에 맞추어 진화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묻었다는 것이다. 추운 곳에 사는 생명체는 혈액 중에 부동액의 성분과 같은 기능의 물질 비중을 높이고, 외피를 두껍게 하거나 기초 대사량을 늘리거나 그 반대로 동면과 같은 저대사 체제로 살아남지만 인간은 불을 피우고 옷을 만들어 입고 집을 짓는다. 단단한 것을 씹는 일과 울퉁불퉁한 바닥을 맨발로 걸을 일이 줄어듦에 따라 이는 약해지고 발바닥은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러한 인간의 다음 진화는 존재하는 것일까. 있다면 어떠한 형태일까. 이러한 문제를 『유년기의 끝』에서는 외계 존재에 의해 해결하고 있다. 여기서 인류는 오버마인드로 흡수되지만, 우리는 다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진화의 양 극단에 서있는 두 개의 존재, 오버로드와 오버마인드. 현생 인류의 대부분은 분명 오버로드와 같은 진화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극에 이르면 인간의 육체적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발달한 문명이 육체가 적응해야 할 부분을 대신 적응해줄테니까 말이다. 또는 인간이 육체라는 그릇을 벗게 된다면 어떨까. 오버마인드의 경우에는 책 속에서 설명되지 않는 모종의 신비적 형태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방법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매트릭스와 같이 사이버 공간에서 살아가거나 다른 기술로 육체의 조건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을 개발한다면 노화와 죽음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것다. 그러나 오버로드 또는 오버마인드와 같이 된다면 과연 행복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그 때도 과연 행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할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말이다. 이외에도 인류의 진화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을 펼쳐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와 함께…….
스미소니안에서 우주 사진을 가져왔다.
G292.0+1.8: Stellar Forensics with Striking Image from Chandra라고 한단다.
출처; Flickr By Smithsonian Institution
나는 꽤나 괜찮게 읽었기 때문에 누가 이 책을 들고 와서 읽어볼만 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순순히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추천하거나 할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또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스토리와 주제의식때문에 이 책과 내 리뷰에 대해서도 각자 의견이 갈릴 것 같다. 나 또한 굳이 다시 찾아서 몇번이고 읽고 싶은 책은 아니다(나중에 혹시 우주나 존재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 감상적이 되면 다시 꺼내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면서 한 번쯤 읽으면 좋은 책. 급히 찾아서 대충 읽는 책은 아니니 시간을 들여서 읽고 꼭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는게 이 책을 읽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