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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9 [시]기형도; 유예된 죽음의 언어 by 우겐


기형도 시인

기형도 시인의 대표적인 사진. 요절한게 안타깝기만 하다.

  기형도(1960-1989) 시인은 들어보지 못했어도 그가 남긴 작품들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거라 확신한다. 제목에 쓰인 '유예된 죽음의 언어'란 표현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기형도 전집』의 표지 뒤편에 쓰인 말에서 따온 것으로, 간결하지만 그만큼 기형도의 시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되어 이렇게 인용하였다.

  기형도의 시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견디는 시의 강렬한 내구력이다.
  그의 시 내부에서 떠돌고 있는 끊임없는 죽음에의 예감. 우리는 기형도의 시 도처에서 그 예감의 색깔로 물든 어느 푸른 저녁의 축축하고 불길한 안개를 만났다.
  시인은 이미 그의 시 속에서 충부한 죽음을 살았던 것이다. 기형도 시의 강렬한 내구력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시인을 습격했던 바로 그 죽음에의 예감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기형도의 언어들은 유예된 죽음의 언어들이다. 죽음에의 예감으로 끝없이 죽음 이후의 삶을 연장해가는 언어.
  지금까지 우리 시에서 죽음과 절망을 이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았던, 그리고 그것을 이처럼 매혹적인 언어의 성(城)으로 쌓아올렸던 시인은 없었다.
  기형도, 그토록 치명적이고 불길한 매혹, 혹은 질병의 이름

출처;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1999, 책의 뒷표지에서 발췌.


  내가 기형도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엄마 걱정〕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 시를 보고 감탄하며 시인이 누군가 외운 것은 〔안개〕, 기형도라는 이름을 보고 두근거리기 시작한 것은 〔질투는 나의 힘〕과 〔홀린 사람〕이었다. 〔홀린 사람〕은 그 상징성 때문인지 몰라도 언어 문제집과 사설 모의고사에서 제시문으로 출제된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하염없이 시를 몇번이고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대학교에 와서 좀 더 운신이 자유롭게 되고 여유시간이 늘어나 광화문 교보문고나 코엑스 반디앤루니스 종로 영풍문고같은 큰 서점을 가는 경우가 잦았다. 책 냄새도 그렇지만 그런 대형 서점일수록 현 시대를 반영하는 책들의 흐름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서 시간날 때 가서 요즘의 베스트셀러를 죽 훝어보고 구석진 데 가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마저 읽은 뒤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시집 코너를 지나가다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여 반가워 멈춰서게 되었다. 익숙한 이름들이란게 다름이 아니고, 고등학교 시절 넌더리나게 많이 봐왔던 시문학 제시문들, 그 중에서 맘에 드는 시 제목과 시인 이름은 외워놓았던 것이 대학 생활을 하면서 흐물흐물해졌던게 시집 모음을 보면서 하나 둘 기억이 나더라는 것이었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유치환 시인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그러다 어느덧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손이 이르렀고, 코엑스를 나설 때 내 손에는 이미 시와 영수증이 들려있었다.

    한창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분도 우울하고 그런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시를 읽으며 나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몇 번, 고등학교 때 얕은 지식으로 알아놓았던 시들 중에 기형도 시인의 작품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 것도 알았고, 〔홀린 사람〕이상으로 내 가슴을 울리는 시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래된 서적〕이었다.

 
오래된 書籍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나는 '분석하며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고, 학창 시절에도 제시문 분석할 시간에 차라리 두번세번 읽어서 문제를 푸는 것을 택했던 이다. 시 〔오래된 서적〕 또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이 시를 차츰차츰 읽어가다가 문득 마지막의 한 줄――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에 가서 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시 전체를 읽고 부분을 읽고 단어 하나 하나를 읽다가 다시 전체를 읽고 그렇게 곱씹을수록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단지 두 페이지의, 그것도 한 줄 한 줄을 끝까지 채우지도 않는 시 하나가 이처럼 수많은 생각을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 항상 좋은 시를 읽을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고 경탄해마지 않는 일이다.

  두달이 채 되지 않은 때에 나는 다시 책 『기형도 전집』을 책장에 들여놓았고, 이전에 샀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평소 내가 취미를 같이 나누고 싶어했던 친구한테 선물해주었다.[각주:1] 좋아하는 시인도 시도 많지만 시집을 굳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것은 기형도가 처음이고 실제로 사게 된 것 또한 그가 처음이다. 외우는 것을 잘 못해서 내가 좋아한다고 써놓은 위의 〔오래된 서적〕조차도 다 외웠나 싶었다가도 며칠 뒤면 반밖에 기억을 못하지만, 화장실에서고 침대에서고 혼자 있을 때 찬찬히 읽으면 그건 그대로 느낌이 좋다.

  꽤 오래 전에 내가 다니던 다음 카페에서 '학창시절에 감명깊었던 시'로 글이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자기 추억을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것을 보면 다 공부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도 마음 한쪽에 여린 감성 하나씩은 품고 살았었나보다. 바쁜 일상에 휘말려 여유를 잃었다면 집에 가는 길, 작은 서점에라도 들러서 시집을 잠깐 훑어보는 게 어떨까. 왠만한 시는 길어봐야 세 페이지를 넘지 않아 통근 시간대 꽉 들어찬 버스 안에서도 잠시 읽으며 감상에 젖기에 좋을테니 말이다.


  1. 흥미로운 것은 『기형도 전집』을 사고 보니 책 검색표가 끼어 있었다. 누군가 검색해놓고 시집에 끼위놓은 뒤 잊어버렸나 보다. 신림 반디앤루니스였는데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였다. 당연히 검색표답게 위치도 'C315-1 1단부터'라고 나와있었고 이 책에 대해 매우 흥미가 생긴 나는 그 다음날 가보았으나 책을 찾지 못하여 읽을 기회가 없었다. 리뷰쓰면서 생각이 났으니 나중에 읽으러 가봐야겠다. [본문으로]
Posted by 우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