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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 궁극의 진화에 대한 고찰
우겐
2010. 10. 24. 05:29
Arthur C. Clarke, 소준선 역, 『유년기의 끝』, 나경문화, 1992.
장르; SF
가격 4,500원의 위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표지가 뜯겨져 있어 원래 모습을 알 수가 없고 네이버 책 검색에서도 표지가 나오지 않아 표지그림은 생략한다. 그대신 Flickr에서 퍼온 적당한 행성 이미지를 넣어보았다. 출처는 그림에 있다.
원제 Childhood's End. 제목의 한글 번역도 정직하지만 저 제목 또한 내용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바람직한 제목이다.
여기서 간단한 저자소개. 아서 C. 클라크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3대 SF 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사실 필자는 이런 걸 잘 몰랐다). 뒤늦게 검색해보니 로버트 하인라인의 작품은 읽어본 것이 없고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서 C. 클라크 건 한두개씩 있었다. 오히려 필립 K. 딕 단편선이라든지 SF 명장 단편집 등을 읽어서 작가는 모르고 지나간 작품들이 더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다른 책들로는 『라마와의 랑데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영화로 먼저 보고 책도 예전에 읽었다), 『태양계 최후의 날』 등이 있고 지금 도서관에서 또 빌려온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시리즈가 황금가지에서 나왔으니 관심있는 사람을 가져다 읽으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봤을 때의 감상이 그대로 떠오르는 건 이 작가의 우주에 대한 인식이 거기나 여기나 똑같이 드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신비롭고 경외스러우며 인간의 인식 이상으로 뻗어나가있는 세계. 간혹가다 심해공포증과 같이 우주공포증에 대한 말들이 오가는데, 이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일 또는 사건,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심리적인 현상이라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유년기의 끝』을 읽으면 이러한 느낌들이 상상력이 된 문학으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스포일러가 조금, 아니 꽤 있을 수 있겠다. 우선 줄거리를 간단 요약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 말 그대로 간단 요약이고 지금 생각나는대로 쓰는 것이니 크게 기대하고 읽지는 않길 바란다.
간략하게 쓴다고 해놓고 목차보며 쓰다가 꽤 늘어나버렸다. 내맘대로 왜곡이 좀 있으니 알아서 검열해보길 바란다.
이제 감상을 쓰려하는데, 스포일러 꽤 있을 가능성 높다. 이번에는 요약글 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잘 피해야 한다.
조금 사이를 띄워놔야 예상치 못한 이들의 피해가 없을 것 같다. 띄우기용 이미지를 하나 올린다.
사실 기대한 것만큼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감동받거나 느낀게 많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사춘기 시절에 읽었더라면 좀 더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전체적으로는 일단 꽤 마음에 들고 구성상으로도―스토리 자체가 어찌보면 좀 뜬금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포함하더라도―꽤나 튼튼하다. 각 등장인물, 스토름글렌, 죠지, 장, 카렐렌 등으로 주요한 시선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전체적인 스토리의 유기성도 좋다. 스토리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아, 앞에서 이것때문에 이런저런 내용(또는 서술)이 나왔구나'하고 깨달을 만한 복선도 깔끔하고 말이다. 다만 설명이 조금 부족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나 이 부분에서 왜 이러한 내용이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직관이 잘 작용하지 못하게 하는 구석이 간간히 눈에 띄는데, 이는 '인간의 인지를 벗어나있는 우주(혹은 우주생물)'의 서술에서 인간의 시점으로 내용을 전개함에 따라 생긴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어쩌면 번역 과정에서 작가의 암시적인 말들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끔 시골에 내려가서, 또는 여행을 좀 외진 곳으로 가서 밤을 보내다보면 운좋은 날엔 구름 한 점 없고 그대신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밤하늘을 볼 수 있다. 이 때 장소만 허락한다면 적당한 곳에 누워서 별이 가득 찬 밤의 장막을 보는데, 그럴 때마다 신비함과 함께 적막과 두려움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수많은 별들이 마치 내 앞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도 들고, 이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얼마나 작은지, 또 그 안에서 나 하나는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지 생각할수록 우주가 주는 압도감에 숨이 막힐 듯하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느낄 것이라 생각하고, 아마 먼 과거 밤하늘을 보며 생각하던 원시인들도 먼 훗날 지구인들이 진짜로 우주로 진출해 우리은하를 드나드는 때의 미래인들이라 하더라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위에서의 소개글에서도 말했듯이 『유년기의 끝』은 이러한 느낌의 한 단면을 문학적 가상 세계에 현실화시킨 결과로 생각되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외계 존재들을 생각보다 내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외계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외계 존재에 더 친화적인 사람들 중심으로 서술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직접 나타난' 존재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지금 아직 그러한 존재를 느끼지 못한 나의 심적 반발보다 덜할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등장 이후 오버로드는 평화하든지 동물 보호라든지 인간 편의의 확장이라든지 적당한 기술의 전수라든지 하는 혜택들을 가져다주었고 사람들은 점점 오버로드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버로드의 등장부터 인류의 종말까지 몇시간, 길어봐야 며칠에 불과한 시간이 걸릴 뿐이지만 책 내의 시간으로는 황금시대만 하더라도 몇 세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오버로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러한 존재들이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지금까지 오버로드는커녕 어떠한 형태의 외계 존재도 만나보지 않은 나로서는 믿기보단 의심할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상대라면 대놓고는 못 그러겠지만.
『유년기의 끝』에서는 종교에 대해 매우 불신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독실한 이에게는 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오버로드가 가지고 있는 발달된 문명의 이기중에서는 과거를 자기 맘대로 볼 수 있는 텔레비전 비스끄무리 한 게 있어서 그걸로 이것저것 보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온갖 종교의 창시나 이적들이 사실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종교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비롯한 신비의 영역에 있는 세계는 오버마인드의 존재 및 이에대한 설명에서 강력히 긍정하고 있다. 즉 종교가 주장하는 이 현실세계 이면은 인정하되, 지금까지 발달해온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교나 신에 대해는 별 생각없고, 굳이 누가 물어본다면 무신론자보단 불가지론자에 더 가깝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라 가불가에 대해 딱 잘라 말할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 작가의 주장은 내게 꽤나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신은 없지만 신비한 존재는 어찌되었던 있다니, 편한 주장이다) 종교인들이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찌 읽을지 모르겠다.
결말 처리도 흡족하다. 앞에서부터 깔려있는 인류의 종말에 대한 암시와 다음 단계 진화의 등장, 오버로드의 등장과 행동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모두 이루어지고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충격을 주되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여서 극적인 가치도 꽤 높다. 특히 다 읽고 생각할 거리를 좀 던져준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책 내용 자체는 열린 결말은 전혀 아니고 스토리 전체로도 열린 부분이 없지만 이러한 의문점 이외에 소설 외적으로 우주 자체에 대한 성찰과 인간으로서의 자신, 생물의 진화와 신비주의적인 관점을 생각케한다. 다만 이러한 문제들이 너무 형이상학적이라 쉽게 마음와 와닿지 않고 사고하기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나 논의를 쉽게 자아내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친구들이랑 한 방에서 잘때(기숙사 시절엔 항상 그랬다) 잠들기 전 깜깜한 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많았다. 이럴 땐 제3자 뒷담화라든지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못지않게 죽음이라든지 우주라든지 무의식같은 잡다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제들로 밤을 지새웠던 것이 기억이 남는다. 아서 C. 클라크는 그 때의 대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바쁜 현실에서 잊고 있지만 잠들기 전 문득 생각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이런 것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흡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SF를 읽을 때 기대하는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에서의 갈등과 해결, 신개념의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 등에 대해서는 중점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니 이런 점에서 스토리라든지 서술 내용에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그 이성때문에 진화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고들 한다. 지구가 시작된지 대략 45억년이 되었다고들 하고 생명은 더 불확실해서 30~40억년쯤 되었다고들 한다. 그동안 단순한 자기복제물질로부터 미생물, 식물, 동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지들로 생명의 진화는 뻗어나갔고 그 중 인간도 그 가지의 끝에 맺혔다. 자연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어나가는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과 반대로 자신에 맟추어 자연을 변화시키는 길을 택한 인간은 그 선택 덕에 얼마 안 있어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생물로 발돋움했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자연에 맞추어 진화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묻었다는 것이다. 추운 곳에 사는 생명체는 혈액 중에 부동액의 성분과 같은 기능의 물질 비중을 높이고, 외피를 두껍게 하거나 기초 대사량을 늘리거나 그 반대로 동면과 같은 저대사 체제로 살아남지만 인간은 불을 피우고 옷을 만들어 입고 집을 짓는다. 단단한 것을 씹는 일과 울퉁불퉁한 바닥을 맨발로 걸을 일이 줄어듦에 따라 이는 약해지고 발바닥은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러한 인간의 다음 진화는 존재하는 것일까. 있다면 어떠한 형태일까. 이러한 문제를 『유년기의 끝』에서는 외계 존재에 의해 해결하고 있다. 여기서 인류는 오버마인드로 흡수되지만, 우리는 다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진화의 양 극단에 서있는 두 개의 존재, 오버로드와 오버마인드. 현생 인류의 대부분은 분명 오버로드와 같은 진화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극에 이르면 인간의 육체적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발달한 문명이 육체가 적응해야 할 부분을 대신 적응해줄테니까 말이다. 또는 인간이 육체라는 그릇을 벗게 된다면 어떨까. 오버마인드의 경우에는 책 속에서 설명되지 않는 모종의 신비적 형태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방법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매트릭스와 같이 사이버 공간에서 살아가거나 다른 기술로 육체의 조건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을 개발한다면 노화와 죽음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것다. 그러나 오버로드 또는 오버마인드와 같이 된다면 과연 행복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그 때도 과연 행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할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말이다. 이외에도 인류의 진화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을 펼쳐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와 함께…….
나는 꽤나 괜찮게 읽었기 때문에 누가 이 책을 들고 와서 읽어볼만 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순순히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추천하거나 할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또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스토리와 주제의식때문에 이 책과 내 리뷰에 대해서도 각자 의견이 갈릴 것 같다. 나 또한 굳이 다시 찾아서 몇번이고 읽고 싶은 책은 아니다(나중에 혹시 우주나 존재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 감상적이 되면 다시 꺼내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면서 한 번쯤 읽으면 좋은 책. 급히 찾아서 대충 읽는 책은 아니니 시간을 들여서 읽고 꼭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는게 이 책을 읽는 방법일 것이다.
장르; SF
가격 4,500원의 위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표지가 뜯겨져 있어 원래 모습을 알 수가 없고 네이버 책 검색에서도 표지가 나오지 않아 표지그림은 생략한다. 그대신 Flickr에서 퍼온 적당한 행성 이미지를 넣어보았다. 출처는 그림에 있다.
초록색이 묘해서 가져왔다. 멋지지 않은가? 출처는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있다.
원제 Childhood's End. 제목의 한글 번역도 정직하지만 저 제목 또한 내용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바람직한 제목이다.
여기서 간단한 저자소개. 아서 C. 클라크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3대 SF 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사실 필자는 이런 걸 잘 몰랐다). 뒤늦게 검색해보니 로버트 하인라인의 작품은 읽어본 것이 없고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서 C. 클라크 건 한두개씩 있었다. 오히려 필립 K. 딕 단편선이라든지 SF 명장 단편집 등을 읽어서 작가는 모르고 지나간 작품들이 더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다른 책들로는 『라마와의 랑데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영화로 먼저 보고 책도 예전에 읽었다), 『태양계 최후의 날』 등이 있고 지금 도서관에서 또 빌려온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시리즈가 황금가지에서 나왔으니 관심있는 사람을 가져다 읽으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봤을 때의 감상이 그대로 떠오르는 건 이 작가의 우주에 대한 인식이 거기나 여기나 똑같이 드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신비롭고 경외스러우며 인간의 인식 이상으로 뻗어나가있는 세계. 간혹가다 심해공포증과 같이 우주공포증에 대한 말들이 오가는데, 이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일 또는 사건,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심리적인 현상이라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유년기의 끝』을 읽으면 이러한 느낌들이 상상력이 된 문학으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스포일러가 조금, 아니 꽤 있을 수 있겠다. 우선 줄거리를 간단 요약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 말 그대로 간단 요약이고 지금 생각나는대로 쓰는 것이니 크게 기대하고 읽지는 않길 바란다.
간략하게 쓴다고 해놓고 목차보며 쓰다가 꽤 늘어나버렸다. 내맘대로 왜곡이 좀 있으니 알아서 검열해보길 바란다.
이제 감상을 쓰려하는데, 스포일러 꽤 있을 가능성 높다. 이번에는 요약글 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잘 피해야 한다.
조금 사이를 띄워놔야 예상치 못한 이들의 피해가 없을 것 같다. 띄우기용 이미지를 하나 올린다.
나도 밤 사진 이렇게 잘 찍음 좋겠다. 출처; Flickr. 오른쪽 아래에 누가 찍었는지도 있다.
사실 기대한 것만큼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감동받거나 느낀게 많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사춘기 시절에 읽었더라면 좀 더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전체적으로는 일단 꽤 마음에 들고 구성상으로도―스토리 자체가 어찌보면 좀 뜬금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포함하더라도―꽤나 튼튼하다. 각 등장인물, 스토름글렌, 죠지, 장, 카렐렌 등으로 주요한 시선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전체적인 스토리의 유기성도 좋다. 스토리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아, 앞에서 이것때문에 이런저런 내용(또는 서술)이 나왔구나'하고 깨달을 만한 복선도 깔끔하고 말이다. 다만 설명이 조금 부족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나 이 부분에서 왜 이러한 내용이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직관이 잘 작용하지 못하게 하는 구석이 간간히 눈에 띄는데, 이는 '인간의 인지를 벗어나있는 우주(혹은 우주생물)'의 서술에서 인간의 시점으로 내용을 전개함에 따라 생긴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어쩌면 번역 과정에서 작가의 암시적인 말들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끔 시골에 내려가서, 또는 여행을 좀 외진 곳으로 가서 밤을 보내다보면 운좋은 날엔 구름 한 점 없고 그대신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밤하늘을 볼 수 있다. 이 때 장소만 허락한다면 적당한 곳에 누워서 별이 가득 찬 밤의 장막을 보는데, 그럴 때마다 신비함과 함께 적막과 두려움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수많은 별들이 마치 내 앞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도 들고, 이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얼마나 작은지, 또 그 안에서 나 하나는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지 생각할수록 우주가 주는 압도감에 숨이 막힐 듯하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느낄 것이라 생각하고, 아마 먼 과거 밤하늘을 보며 생각하던 원시인들도 먼 훗날 지구인들이 진짜로 우주로 진출해 우리은하를 드나드는 때의 미래인들이라 하더라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위에서의 소개글에서도 말했듯이 『유년기의 끝』은 이러한 느낌의 한 단면을 문학적 가상 세계에 현실화시킨 결과로 생각되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외계 존재들을 생각보다 내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외계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외계 존재에 더 친화적인 사람들 중심으로 서술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직접 나타난' 존재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지금 아직 그러한 존재를 느끼지 못한 나의 심적 반발보다 덜할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등장 이후 오버로드는 평화하든지 동물 보호라든지 인간 편의의 확장이라든지 적당한 기술의 전수라든지 하는 혜택들을 가져다주었고 사람들은 점점 오버로드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버로드의 등장부터 인류의 종말까지 몇시간, 길어봐야 며칠에 불과한 시간이 걸릴 뿐이지만 책 내의 시간으로는 황금시대만 하더라도 몇 세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오버로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러한 존재들이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지금까지 오버로드는커녕 어떠한 형태의 외계 존재도 만나보지 않은 나로서는 믿기보단 의심할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상대라면 대놓고는 못 그러겠지만.
『유년기의 끝』에서는 종교에 대해 매우 불신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독실한 이에게는 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오버로드가 가지고 있는 발달된 문명의 이기중에서는 과거를 자기 맘대로 볼 수 있는 텔레비전 비스끄무리 한 게 있어서 그걸로 이것저것 보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온갖 종교의 창시나 이적들이 사실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종교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비롯한 신비의 영역에 있는 세계는 오버마인드의 존재 및 이에대한 설명에서 강력히 긍정하고 있다. 즉 종교가 주장하는 이 현실세계 이면은 인정하되, 지금까지 발달해온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교나 신에 대해는 별 생각없고, 굳이 누가 물어본다면 무신론자보단 불가지론자에 더 가깝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라 가불가에 대해 딱 잘라 말할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 작가의 주장은 내게 꽤나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신은 없지만 신비한 존재는 어찌되었던 있다니, 편한 주장이다) 종교인들이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찌 읽을지 모르겠다.
결말 처리도 흡족하다. 앞에서부터 깔려있는 인류의 종말에 대한 암시와 다음 단계 진화의 등장, 오버로드의 등장과 행동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모두 이루어지고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충격을 주되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여서 극적인 가치도 꽤 높다. 특히 다 읽고 생각할 거리를 좀 던져준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책 내용 자체는 열린 결말은 전혀 아니고 스토리 전체로도 열린 부분이 없지만 이러한 의문점 이외에 소설 외적으로 우주 자체에 대한 성찰과 인간으로서의 자신, 생물의 진화와 신비주의적인 관점을 생각케한다. 다만 이러한 문제들이 너무 형이상학적이라 쉽게 마음와 와닿지 않고 사고하기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나 논의를 쉽게 자아내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친구들이랑 한 방에서 잘때(기숙사 시절엔 항상 그랬다) 잠들기 전 깜깜한 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많았다. 이럴 땐 제3자 뒷담화라든지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못지않게 죽음이라든지 우주라든지 무의식같은 잡다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제들로 밤을 지새웠던 것이 기억이 남는다. 아서 C. 클라크는 그 때의 대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바쁜 현실에서 잊고 있지만 잠들기 전 문득 생각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이런 것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흡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SF를 읽을 때 기대하는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에서의 갈등과 해결, 신개념의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 등에 대해서는 중점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니 이런 점에서 스토리라든지 서술 내용에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그 이성때문에 진화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고들 한다. 지구가 시작된지 대략 45억년이 되었다고들 하고 생명은 더 불확실해서 30~40억년쯤 되었다고들 한다. 그동안 단순한 자기복제물질로부터 미생물, 식물, 동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지들로 생명의 진화는 뻗어나갔고 그 중 인간도 그 가지의 끝에 맺혔다. 자연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어나가는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과 반대로 자신에 맟추어 자연을 변화시키는 길을 택한 인간은 그 선택 덕에 얼마 안 있어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생물로 발돋움했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자연에 맞추어 진화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묻었다는 것이다. 추운 곳에 사는 생명체는 혈액 중에 부동액의 성분과 같은 기능의 물질 비중을 높이고, 외피를 두껍게 하거나 기초 대사량을 늘리거나 그 반대로 동면과 같은 저대사 체제로 살아남지만 인간은 불을 피우고 옷을 만들어 입고 집을 짓는다. 단단한 것을 씹는 일과 울퉁불퉁한 바닥을 맨발로 걸을 일이 줄어듦에 따라 이는 약해지고 발바닥은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러한 인간의 다음 진화는 존재하는 것일까. 있다면 어떠한 형태일까. 이러한 문제를 『유년기의 끝』에서는 외계 존재에 의해 해결하고 있다. 여기서 인류는 오버마인드로 흡수되지만, 우리는 다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진화의 양 극단에 서있는 두 개의 존재, 오버로드와 오버마인드. 현생 인류의 대부분은 분명 오버로드와 같은 진화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극에 이르면 인간의 육체적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발달한 문명이 육체가 적응해야 할 부분을 대신 적응해줄테니까 말이다. 또는 인간이 육체라는 그릇을 벗게 된다면 어떨까. 오버마인드의 경우에는 책 속에서 설명되지 않는 모종의 신비적 형태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방법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매트릭스와 같이 사이버 공간에서 살아가거나 다른 기술로 육체의 조건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을 개발한다면 노화와 죽음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것다. 그러나 오버로드 또는 오버마인드와 같이 된다면 과연 행복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그 때도 과연 행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할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말이다. 이외에도 인류의 진화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을 펼쳐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와 함께…….
스미소니안에서 우주 사진을 가져왔다. G292.0+1.8: Stellar Forensics with Striking Image from Chandra라고 한단다. 출처; Flickr By Smithsonian Institution
나는 꽤나 괜찮게 읽었기 때문에 누가 이 책을 들고 와서 읽어볼만 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순순히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추천하거나 할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또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스토리와 주제의식때문에 이 책과 내 리뷰에 대해서도 각자 의견이 갈릴 것 같다. 나 또한 굳이 다시 찾아서 몇번이고 읽고 싶은 책은 아니다(나중에 혹시 우주나 존재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 감상적이 되면 다시 꺼내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면서 한 번쯤 읽으면 좋은 책. 급히 찾아서 대충 읽는 책은 아니니 시간을 들여서 읽고 꼭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는게 이 책을 읽는 방법일 것이다.